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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친구 테라피 (글 김민철)

기독정신과
2022-06-30
조회수 78

출처: http://www.duranno.com/sl/view/article.asp?nid=18468

친구 테라피

빛과소금 issue 2022년 07월호. 친구 테라피. 글 김민철


‘친구 테라피’라는 상담 및 정신 치료법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 처음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치료는 제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생각해 본 치료법입니다. 이런 이름의 치료법은 없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실 서로에게 이미 친구 테라피를 해 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친구라는 존재는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서로에게 치유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가족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가족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가족이 건강에는 도움이 되나 수명 연장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수명 연장에도 도움이 되는 관계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친밀한 친구 관계는 건강뿐만 아니라 수명 연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가족이 훨씬 더 친밀하고 더 의미 있는 관계일지라도 친구와의 관계로 인한 수명 연장 효과는 따라갈 수 없나 봅니다. 가족과 달리 왜 친구 관계는 수명 연장에도 도움이 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일단 진정한 친구 관계는 서로에게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해도 다 받아주는 친구와는 비밀이 없지요. 말 못 할 어려움도 친구에게는 속 시원하게 풀어낼 수 있으니 스트레스가 해결됩니다. 진정한 친구만큼 무조건적 신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관계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가족 관계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의 책임도 져야 하고, 참고 인내해야 하며, 끝없는 노력과 여러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합니다. 친구 관계가 사랑의 자유를 누리는 관계라면 가족 관계는 사랑의 책임을 지는 관계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 없이 친구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가족이 친구 관계보다 못하다는 말도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 하나님이 심어 두신 사랑과 성장의 비밀이 훨씬 더 큽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가장 잘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곳이 가정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곳이 가정이라 해도 사실 가정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부부의 대부분은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격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타고난 기질이 정반대인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지요. 그래서 첫눈에 반할 만한 차이점이 결혼 생활을 이뤄 가면서는 갈등의 핵심 이유가 됩니다. 이 차이점을 사랑으로 수용하고 성숙시켜 나가야 하는 부부 관계에 하나님의 하나 됨의 비밀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친구 관계는 어쩌면 가족 관계를 도와주는 쉼의 관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 관계뿐만 아니라 참으로 어려운 사회적, 직업적 관계와 갈등을 지혜롭게 통과하도록 돕는 관계도 친구 관계입니다. 물론 친구 관계는 그 자체가 아름답고 그 자체로 목적이기도 합니다. 다윗에게 절친 요나단이 있었듯이 특별히 결혼 전에는 자신의 원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를 통해서 기쁨을 누리고 성장합니다. 결혼 후에도 우리는 친구가 있어 지혜와 쉼을 얻습니다. 가족 관계든 친구 관계든 하나님은 여러 형태의 사랑의 관계가 다 필요하니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조금 더 힘든 관계도 있지만 모든 힘든 관계의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는 친구 관계도 주신 것이지요. 훈련을 통해서 다듬어져야 할 관계만 있다면 우리는 지쳐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오아시스처럼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것입니다. 

친구 테라피를 해 줄 진정한 친구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배우자가 진정한 친구라면 금상첨화겠습니다. 친구 테라피를 만든 분은 하나님이시며 진정한 친구 역시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친구 대하듯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하듯 우리를 대하시며 친구 테라피를 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친구는 나이를 초월하는 개념입니다. 좁은 의미의 친구는 동갑내기의 친구를 의미하지만 나이와 무관한 쉴 수 있는 관계가 진정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셔서 쉼을 주십니다. 친구는 친구를 만나면 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친구가 절실하지만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리도 좋은 친구가 되어 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일까요?


첫째, 무의식이 건강한 친구입니다. 무의식이 더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의식 안에 진리와 기쁨과 평안이 풍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무의식이 80% 이상 차지합니다. 내가 아는 내 마음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내 마음 상태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으나 그런 상태는 쉽게 사라집니다. 사람의 마음 깊은 무의식까지 평안과 기쁨이 넘칠 때 우리는 내적으로 견고하고 따뜻하며 쉼을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무의식이 건강해야 친구의 고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 안에 참된 기쁨이 넘쳐야 그 평안이 주변으로 흘러넘쳐 주변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무의식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무의식이 나보다 더 회복된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무의식의 성장을 더 이룬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상당히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똑같이 선포하지만 자기의 무의식 저 밑에서부터 그 말을 믿고 의식적 언어와 함께 선포하는 말의 힘과 의식적이며 지식적으로만 그 말을 선포하는 말의 힘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무의식이 회복될수록 인격 전체가 하나 됨을 이루며, 무의식적 믿음까지 동원되어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과 삶이 성숙한 이유가 저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식과 나누어진 무의식이 전혀 없이, 모든 마음이 하나로 진리 가운데 성숙한 예수님이시니까요. 무의식이 빛 가운데로 드러나고 치유될수록 성령의 열매도, 은사도, 성품도 풍성해지며, 결국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순종의 삶을 자원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무의식이 성숙한 사람과 교제하고, 제자 훈련을 하고, 인생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고, 멘토링을 받는 일은 무의식이 덜 건강한 사람을 성장으로 이끕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을 치유하게 하시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더 건강한 무의식을 덜 건강한 무의식이 닮아가는 것이지요.

 

둘째, 기쁨으로 잘 회복하는 친구입니다. 무의식적 기쁨이 점차 늘어나는 사람들은 내면에 부정적 감정보다 기쁨이나 평안 등의 긍정적 감정이 핵심 자리에 있습니다. 무게 중심이 부정적 감정에 있지 않고 긍정적 감정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 어려운 일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잠시 흔들려도 다시 무게 중심을 잡고 기쁨 및 평안으로 잘 돌아옵니다. 우리의 주변에 이런 사람이 친구라면 그와의 만남과 관계를 통해서 부정적 감정 처리법을 부지불식간에 배울 수 있습니다. 감정적 평정심과 안정은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지 않습니다. 함께 눈을 보고 대화를 하며, 교제를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서히 배우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무의식적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감정에서 긍정적 감정으로 어떻게 돌아오는지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친구와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부정적 감정을 전보다 더 잘 처리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친구의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꼭 나눠 줘야 합니다. 내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내 코가 석 자라 할지라도 그래서 내게 진실한 친구가 지금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내가 친구가 되어 줘야 하는 또 다른 사람에게 다가서야 합니다. 친구 테라피를 받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받는 위치에만 있는 것도 자기중심성이 강한 것이지요. 내가 누군가에게 줄 여유가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실상 내게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작은 사랑이 분명 존재합니다. 친구 테라피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꼭 주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내 주변에 내게 도움을 줄 무의식적으로 성장한 친구뿐만 아니라 내가 당장 도와야 하는 나보다 무의식적으로 미숙한 친구까지 함께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줄로 묶여 있어 서로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줘야 합니다. 사랑은 흘러 들어오며 동시에 흘러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라고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되면 내 주변은 밝아집니다. 우리의 무의식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쁨, 지체들의 사랑으로 채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쉼을 나눠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친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조건부는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 내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어 준다면 교회 공동체의 거룩한 원리를 통해서 내게도 가장 좋은 친구가 허락될 것입니다.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신 내 친구 예수님처럼 우리 무의식에 가득한 기쁨을 가지고 친구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김민철은 김민철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J심리치료연구소 소장이다. 성경적 마음치유사역(국제생명나무사역)으로 개인과 교회를 섬기고 있다. 공저로 「우울한 마음을 안아드립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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